사라진 호박방을 찾아나선 추적자들의 이야기, 스티브 베리의 '호박방'


   이 책을 찾았을 때 쯤에는 정말 생활에 지쳐있었다. 빠져들어 도피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들어서면 나는 서슴없이 추리소설을 찾아나섰다. 그 날은 운이 좋았는지, 항상 대출되어 있던 이 책을 발견했다. 스티브 베리(Steve Berry)의, 계 8대 불가사의 '호박방'을 추적한 화제의 미스터리라고 이 책은 소개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치의 약탈에 의해 완전히 모습을 감춘 호박방을 두고 쓴 소설이라니, 정말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호박방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눈여겨 볼 만 한 것은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인데, 한 명 쯤 사라지면 잊어버릴 수도 있을련만, 끝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캐릭터 구성이 탄탄하다. 소비에트의 특별위원회 소속으로 약탈당한 러시아의 미술품을 찾는 일을 했던 카롤 보리아와 차파에프. 그리고 카롤 보리아의 딸 레이첼과 그녀의 남편 폴. '사라진 골동품을 회수하는 사람들'이라는 클럽에 소속되어 전세계의 보물들을 추적하며 경쟁하는 에른스트 로링과 펠너. 그리고 그들의 밑에서 일하는 크리스티안 크놀과 수잔 단처의 끝없이 계속되는 접전...역시 호박방을 찾아 인생을 건 모험을 하고있는 맥코이... 내용전개가 매우 빠른 편이고, 그래선지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뗼 수가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시험기간이라서 자투리 시간마다 고통스럽게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면서 책을 덮었는데, 그래선지 소설의 내용이 오히려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극의 방향은 레이첼과 폴을 중심으로 달려나가지만, 이 소설에 극적 긴장감을 부여하고, 속도를 타게 하는 인물은 바로 수잔 단처와 크리스티안 크놀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두 인물을 너무 맹목적이고, 사악하게 그린 점 때문에 인물에 대한 몰입도는 떨어지지만, 소설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선은 결국 이들을 따라가게 되어있었다. 전체적으로 스티브 베리의 <호박방>은 정말 스릴있고, 자극적인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세계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점이 만족스러웠다.

     한편, 약간은 아쉬운 점도 있다. 작가의 캐릭터 설정능력은 탁월하지만, 개성있고 입체적이어야 할 캐릭터들에 대해서 도저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크리스티안 크놀과 수잔 단처를 꼭 그렇게 맹목적인 인물로 묘사해야만 했을까.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고뇌같은 것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거의 소설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는데도 말이다. 특히 크리스티안 크놀의 성도착적인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왜 그가 레이첼과의 섹스에 집착해야만 했던 걸까. 크리스티안이 꼭 레이첼을 범하는데 집착해야만 하는 극적인 전개상의 이유가 있을까. 그냥 그를 사악한 인물로 묘사하기 위한 장치라기엔 뭔가가 맞지 않는 설정처럼 여겨진다. 더구나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판사로,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까지 주는 레이첼이 크리스티안에게는 왜 그렇게 섹스어필한 여인으로 묘사되는지 그다지 공감이 가지가 않았다. 크리스티안 크놀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인데, 그의 시선과 동선을 중심으로 독자들을 소설의 세계로 이끌면서 그에게 인간성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작가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저 소설 속에서 크놀과 수잔은 보물추적자와 상금으로 비유되는 인물로 묘사될 뿐이다. 이 점이 정말 아쉬웠다. 쉰들러 리스트의 괴트처럼 악의 정점에 서있으면서도 기본적인 인간의 고뇌를 보여주었더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런저런 불평을 해도 <호박방>은 정말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추리소설 서가를 돌아다녀도 이정도의 흡입력을 갖춘 소설을 골라내기란 그리 쉽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스티브 베리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이 소설을 꼭 영화로 만나고 싶다. 머릿속에 그렸던 스토트 지방의 풍경, 웅장한 호박방, 미술품으로 가득찬 로링의 루코프 성과 펠너의 헤르츠 성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난다면 환상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작비 때문에 영화화 될 확률이 좀 희박하긴 하지만;;

by dawning | 2008/07/07 02:54 | 서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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