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7일
추리소설을 가장한 심리소설, 제드 러벤필드의 '살인의 해석'


이 소설은 살인사건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에 기울어지지 않고, 당시의 맨해튼 상류사회, 뉴욕의 풍경에 대해서도 자세한 묘사를 한다. 그리고 주인공 '영거'의 개인적인 가족사, 그리고 프로이트를 포함한 정신분석학자들에 대한 대화들이 가득 담겨있다. 솔직히 추리소설이라서 긴박함과 스릴을 기대했지만, 이 소설의 중심은 그 사건보다는 각각 주인공들의 심리상태 분석에 대해 더 기울어져 있었다. 특히 각각의 영역에서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는 정신분석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기도 했다. 프로이트와 카를 융의 미묘한 관계(실제로 후에 결국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을 선언하게 된다.), 프로이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 융을 질투하는 프로이트의 다른 제자들. 기묘하면서도 독특한 융의 심리, 마치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그들의 관계..앞부분을 읽어가면서는 사실상 주인공은 마치 영거보다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의 뒷부분은 점점 사건의 실마리를 파고들어가면서, 사건에서 살아남은 '노라'에게 포커스가 맞추어 진다. 말을 잃어버린 노라에게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해나가는 영거와 흔들리는 영거를 도와주는 프로이트와의 대화는 정말 인상깊었다. 여기에 더해지는 햄릿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살인사건은 뒤에 반전이 있었지만, 그다지 극적이지는 않았고, 읽어나가던 중에 어느정도는 예상하던 것이라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이 점이 아쉽다. 엄청난 반전을 기대했건만..) 이 책이 독특한 것은 그 반전마저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설명된다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근친상간의 욕구, 리비도와 억압. 프로이트의 이론을 잘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소설에 동원되는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말하자면..대략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533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책의 분량에 이 책을 다 읽을 수나 있을까, 생각했었지만, 후반에 들어갈 수록 흥미진진함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앞부분은 좀 지루했다. 영거에 대한 개인사나 뉴욕의 풍경, 맨해튼 상류사회에 대한 설명이 좀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자들의 흥미로운 대화나, 햄릿에 대한 해석, 이에 대한 주인공의 집요한 탐구는 상당히 흥미로웠고, 지적인 욕구를 가득 채워주는 부분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려다 보니까, 사건에 대한 집중력이 좀 흩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반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긴박함이라든지, 추리소설 특유의 스릴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심리학적인 해석과 사건에 대한 정황이 맞아떨어져,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설을 들었는데, 정말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프로이트와 영거, 그리고 리틀모어 형사 역에 누가 캐스팅될지 정말 궁금하다. 제드 러벤필드(Jed Rubenfeld)의 <살인의 해석>은 시각적인 묘사를 아주 잘 했는데, 실제로 뉴욕에 살아 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곳, 소설 속 인물들이 거니는 곳까지 그려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영화화 되는데, 이런 점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살인의 해석>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 사건의 몰입도가 높고, 빠른 전개를 통한 긴박감이 있는 그런 종류의 추리소설이 아니라, 추리소설을 가장한 심리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위트있으면서도 깊이있게 사건을 분석해나가는 점이 상당히 인상깊었고, 그 점이 이 소설을 읽는데 재미를 주는 주요소이기도 했다. 533페이지는 너무 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살인의 해석>은 시간을 들여 읽을만한 괜찮은 소설이었다. 심리적인 분석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만한 추리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 by | 2008/07/07 03:05 | 서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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