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7일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란?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세전 소득이다.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다. 탈출구는 없다. 이 20대가 조승희처럼 권총을 들 것인가, 아니면 전 세대인 386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우석훈, 박권일 저 88만원 세대 中-
동전 한 푼 없던 내게 오랫만에 돈이 생겼다. 나이가 스물이 넘어서도 아직도 어른들로부터 세뱃돈을 받는 게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 세뱃돈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 돈으로 읽고 싶은 책을 오랫만에 빌리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항상 대출 중이라서 빌리기를 이미 오래전에 포기하고 있었다.
88만원 세대.. 바로 그 세대에 속하는 나는 요즘들어 궁금한 게 참 많아졌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일들을 지켜보면서 아는 게 힘이라는 생각을 더더욱 굳혀나가기도 했고,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이것저것 포기하고, 어려워 하면서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시달리기엔 불황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세대를 지칭하는 88만원 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무엇인가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지금의 상태로는 시간을 두고 도박을 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도전이라든지, 열정이라든지 그런 20대를 상징한다고 광고에 나오는 말들은 이미 멀어진지 오래였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오로지 '살아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의 이런 내 상태를 두고 지극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지만, 또한 '죄수의 딜레마'와 같다고 했다. 결국 누군가가 '나머지'가 될거라는 걸 누구나가 다 알지만, 그 사실이 지금의 현실을 더 낫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이 책은 스무살이 넘어도 여전히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우리는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 수도 있을거라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연대를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려고 했던 다른 나라들과 한국이 선진국과 선진국이 아닌 나라로 불리는 이유도 제시하고 있었다.
지금 잠깐만 뒤를 돌아보면, 어린 동생이 아직 자고 있다. 아직 10대. 내 동생이 대학생이 되어 사회로 나올 때쯤이면 지금보다 더 심화되어 있을 지금의 상황.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신자유주의에 날개를 달아준 한국 경제가 양극화로 휘청휘청거리고 있고,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비애 또한 이로인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하게 된 것은, 이렇게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었다. 이렇게 꽉꽉 막힌 한국사회에 돌파구가 있을까? ................ 내가 너무 비관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참으로 슬프게도 앞으로 한국에서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한 돌파구가 생기지는 않을 거 같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도 잘 쓰여진 책이고, 나에게 중요한 사실들을 상기시켜 준 소중한 책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은 아니다. 절망의 시대에 쓰는 절망의 경제학이라는 말이 더 현실에 맞다. 저자는 이 책의 끝부분에서 빌리에 드 릴라당의 <희망고문>을 인용하면서 작금의 사태를 비판했지만, 나에게는 이 책 또한 희망고문으로 여겨졌다. 스웨덴에서의 볼보주의, 스위스나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나라들에서의 사회연대를 통해 다같이 잘 살자라는 식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복지사회 모델, 바로 옆의 일본에서의 신뢰자본주의...이런 선례들이 한국에는 아무 영향을 미칠 수가 없을거다.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나도 저런 나라에서 살고 싶어. 이런 말들만 하다가 말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국민경제 2만달러에 들어섰는데, IMF가 끝났다는데도 사람들은 더 힘들게 살고 있다. 2만달러 경제를 가졌다는 나라에서 아직도 시장에 가면 장애가 있어서 땅을 기면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등록금을 못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신문에 나오고, 경제적 궁핍에, 노쇠해진 몸으로 더이상 치매에 걸린 아내를 부양할 수 없어 동반자살한 노년부부의 사연이 기사에 실려도 사회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정부패로 얼룩지고, 고작 건보료 하나 안낼려고 탈세까지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에 매긴 종부세 하나 안낼려고 강남에서는 몇미터씩 줄을 서서 투표를 해서 그 후보를 찍어줬다고 한다. 교육도 시장에, 의료도 시장에 맡긴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제대로 된 논의 하나 진행되지가 않는다. 삭감된 복지정책 예산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반영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수지 안 맞는데 강제로 정규직 쓰라면 쓰겠나", "태안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왔다 갔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체 노동자들이 저렇게 자원봉사하는 기분으로 자세를 바꾼다면 그 기업이 10% 성장하는 게 뭐가 어렵겠느냐"라는가 하는 말들이 당선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대기업 경영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서민들과 노동자들을 대하는 그의 발언은 참..;; 그래도 여전히 50%이상의 지지율이다. 그리고 복지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다들 자신들이 5%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보다, 아니 적어도 그들의 편을 들면 더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나보다.(이 책은 2007년 8월에 나온 책이다. 책이 나오고, 고작 6개월 가량이 지났지만 지금의 현실은 이러하다. 모든 것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들과 반대의 상황으로 가고 있고, 더 앞서나가서 반대로 가기 위한 청사진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부유층들은 더 잘살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자신들이 구분되길 원한다. 살기 힘든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현실이니까. 20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적어도 영향력을 제대로 끼칠 수 있는 돌파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스타벅스에 가기를 거부하고 20대 사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와 차를 마시겠다는 선언 하나가 의미있는 출발점이 될거라고 말하지만, 그게 의미있는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결국 기득권층의 양보와 연대의식없이는 이루어질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위와 같은 선언이 이미 파편화되어있는 20대들의 인간관계에서 두루 통용될 수 있을지, 이미 개별화되어 있는 20대들이 단결된 하나의 힘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20대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 심지어 서로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 그것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그들 말로,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말그대로, 실천은 커녕 토론의 탁자위로 문제들을 끌어올리는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88만원 세대. 이 책을 읽고나서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이런 현실을 제대로 보는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너무도 날카롭고 정확히 분석한 현실의 모습을 제시해, 가슴을 날카로운 칼로 후벼파는 느낌을 들게했다. 책을 손에 들고 놓을 수 없을 만큼 흠입력이 강했지만, 그래서 끝까지 다 읽는 게 너무도 힘들었다. 희망은 남아 있을까, 지금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이 기분이 희망고문이 아니길 바란다.
-이 글이 이번 해 2월에 쓴 글인데, 겨우 4개월이 지난 지금, 너무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내 주위는 여전히 같은 분위기지만, 전체적으로 여론과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매일 서울광장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고, 20대들의 정치관심도도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선거에서는 20대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유권자층으로 꼭 투표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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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우석훈/박권일,『88만원 세대』요약 - 1부 by shadow
# by | 2008/07/07 03:17 | 서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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